[한겨레 뉴스] 여행기자도 걸렸다. 온라인 여행사 ‘함정’에 [ 2012.11.23 2021 ]
|  2012-12-03 [11:59:27]   
이 름 : 운영자
  조회 : 1151
세계적인 온라인 여행사들이 국내에도 속속 진출하고 있다. 다양한 선택 폭과 저렴한 가격이 장점이지만, 서비스의 질을 두고 불만도 나오고 있다. 휴가철 여행을 떠나는 관광객들.

[토요판] 뉴스분석 왜? 외국계 온라인여행사 주의보
싸다, 정말 싸다…그런데 함정이 있다

▶ 호텔스닷컴, 아고다, 익스피디아 등 글로벌 여행사들의 누리집(홈페이지)은 구경만 해도 흡족합니다. 세계 어느 곳이든 가는 비행기, 배낭여행자의 누추한 게스트하우스부터 국왕이 묵는 특급호텔까지 ‘여행 천국’이 펼쳐져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가격이 매력적일 정도로 쌉니다만, 여행 천국의 룰을 지키지 않는 소비자들에겐 ‘벌금’이 가차없이 매겨집니다. 이들 업체가 국내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걸 알고 계신지요? 글로벌 여행자본주의는 이미 국내 법·제도를 넘어섰습니다.

한국어 누리집, 콜센터 개설해
한국인들에게 상품 팔아도
국내 법인등록 안돼 외국법 적용
환불이나 예약 변경 어렵고
소비자 피해 있어도 대응 못해

호텔스닷컴, 아고다, 익스피디아…
불과 1년 만에 무섭게 성장
일부선 ‘대형마트 전술’ 연상
싼값으로 시장 장악한 뒤
나중에는 지배력 행사할 수도

여행 기자를 2년이나 한 ‘여행9단’도 걸렸다. 그것도 두번씩이나.

첫번째 사건은 지난해 여름 아이슬란드 여행을 준비할 때였다. 외국의 온라인 여행업체인 익스피디아, 호텔스닷컴, 부킹닷컴, 아고다 등을 검색, 비교, 예약하고 있었다. 항공과 숙박은 끝나고 렌터카 차례였다. 일주일 빌릴 거라 꽤 비쌌는데, 한 업체에서 검색된 렌터카 가격이 아이슬란드 현지 업체보다 200~300유로 싼 게 눈에 띄었다.

싸늘한 목소리 “어쨌든 안 됩니다”

‘예약 버튼을 누르면, 결제는 바로 진행되며, 환불과 예약 변경은 전화로만 가능합니다’는 내용의 메시지가 떴다. 심호흡을 한번 한 뒤, 예약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예약이 완료되면서 동시에 ‘업체의 사정에 따라 가격이 바뀌었습니다’는 메시지가 떴다. 가격은 현지 업체보다 훨씬 비싸져 있었다. 다행히 인터넷으로도 예약을 취소할 수 있다는 메시지도 연이어 떴다. 갑자기 가격이 바뀐 건 자신 때문이니, 불편한 전화 대신 인터넷으로 취소해주겠다는 뜻처럼 보였다. 하지만 예약을 취소하고서도 걸리는 게 있었다. 액티비티 피(activity fee)라고 따로 분류된 자동차보험이 취소되지 않았다.

그래서 전화를 했다. 국제전화를!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고장 난 녹음기처럼 ‘지금 통화대기자가 많으니 다른 시간을 이용해주세요’라고 흘러나왔다. 일주일 동안 몇 번을 전화했고, 결국 연결된 상담원은 “아임 소 소리”라고 했지만 그뿐이었다. 평소보다 무거운 전화요금 청구서를 받아야 했다.

두번째 사건은 몇 달 뒤 영국 출장을 준비하면서 터졌다. 한 외국의 온라인 여행업체에 런던 시내의 괜찮은 호텔이 11만원에 나왔다. 역시 ‘환불은 안 되는 거예요’라는 메시지를 주의 깊게 봤고, 심호흡을 한 뒤 예약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아뿔싸! 10월16일치 예약을 해야 하는데 일주일 전인 10월9일치 예약을 해버렸다! 이런 바보 같으니라고!

한국어 누리집을 운영하는 이 업체는 다행히 한국 전화번호를 갖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냉정했다. “미안합니다. 그건 환불 불가 상품이어서, 실수로 그렇게 하셨더라도 예약 변경이 되지 않습니다.” “다음주 똑같은 가격의 객실이 있던데요?” “환불 불가 상품은 예약 변경 시스템 자체가 없어요.” “그럼 호텔에 직접 연락해 바꾸면 안 될까요?” “그러시든지요.”

런던 호텔에 ‘국제전화’를 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역시나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그 예약 건은 온라인 여행업체가 진행하는 거예요. 우리가 예약 시스템에 손댈 수 없습니다.”

호텔스닷컴, 아고다, 익스피디아, 부킹닷컴… 인터넷에서 항공권이나 호텔을 예약할 수 있는 외국계 대형 온라인 여행업체다. 싸다. 정말 싸다. 호텔패스, 호텔자바 등 한국 여행업체도 있는데, 이들보다 훨씬 선택의 폭이 넓다. 그래서 자유여행을 선호하거나 해외출장이 잦은 젊은 직장인들은 이곳에서 호텔을 잡고 비행기를 탄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시장을 장악했다. 과거엔 영문 누리집만 있었기 때문에 ‘여행 고수’들만 알았지만, 최근 2~3년 사이 일제히 한국어 누리집과 콜센터를 개설하고 호텔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마케팅에 들어가면서 이용자가 급증하는 추세다.

여행 고수들이 모인다는 유럽 배낭여행 카페에는 외국계 온라인 여행업체에 대한 불만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인터넷에서는 ‘호텔예약사이트 피해자모임’이라는 카페가 개설되기까지 했다. 대부분 온라인 업체에서 객실료는 인터넷에서 예약하는 순간 결제된다. 이 때문에 문제는 주로 ‘예약 변경 및 환불 불가’ 조건의 호텔 상품에서 발생한다. 지난 8월 가족과 함께 유럽 여행을 갔다 온 이혜정(39)씨도 불쾌감을 맛보아야 했다.

“호텔 객실을 4인으로 지정해 결제했는데, 바우처를 보니 3인으로 나와 있었어요. 바로 전화를 했는데 ‘예약 변경·환불 불가 상품은 어떤 형태로든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대답밖에 들을 수 없었어요. 아주 냉정하게 말하더라고요. 결국 좁은 2인실을 쓰면서 방값에 맞먹는 2명의 추가요금을 냈죠. 처음부터 4인실이 예약됐으면 편하게 지냈을 텐데요.”

외국계 여행업체 누리집.
카드수수료 고객 부담, 여행보험도 안 돼

이씨는 자신이 이용한 업체가 국내 업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나중에 알고서 놀랐다고 말했다. 누리집에서는 ‘한국 법률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공지를 그는 발견할 수 없었다. 이씨는 “처음 표기된 가격과 달리 카드수수료도 소비자가 부담해야 하는 등 국내 업체와 달랐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례는 소비자의 실수나 온라인 여행업체와 호텔의 착오로 보인다. 실수가 일어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외국계 온라인 여행업체는 실수를 융통성 있게 해결하지 않는다며 소비자들은 불만을 터뜨린다. 그리고 환불 불가 조건이 국내 상거래 관행과 다른 점을 충분히 고지하지 않는다는 점도 문제로 제기된다.

지난해 11월 한국소비자원은 호텔스닷컴과 아고다에 ‘피해예방주의보’를 내렸다. △예약 변경·환불이 안 되는 경우 △호텔에 갔는데 객실이 없는 경우 △예약 취소 수수료를 부과한 경우 등 그해 1월부터 10월까지 50여건의 사례가 접수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비자원은 피해 보상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왜 그럴까? 외국계 온라인 여행업체의 사무실과 전산 서버가 외국에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이 아니라 외국 기업이라는 얘기다. 20일 한국소비자원의 금융보험팀 관계자가 말했다.

“국내 업체의 경우 소비자원이 합의 권고를 할 수 있지만, 외국 업체는 정부기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잖아요. 이들 업체는 국내 기준을 인정하지 않아요. 사업자가 국내에 없고 법인 등록도 외국에 했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 국내법에 의한 처리가 어렵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민사소송을 진행하기 쉽지 않고요.”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들이 ‘무등록 여행업체’라고 밝혔다. 국내에서 여행업을 하려면 관광진흥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하고 국세청에 사업자 신고를 내야 한다. 외국계 온라인 여행업체는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고객들은 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부담해야 하고, 업체가 부도나거나 폐업했을 때 피해를 보상받는 여행보증보험의 혜택도 누릴 수 없다. 한국 사무실을 내고 온·오프라인에 광고를 하고 한국어 누리집을 따로 만들어 한국 사람들에게 판매하지만 이들 업체는 정작 세금을 내지 않는 것이다. 여행업계 전문지인 <여행신문>의 최승표 기자는 “세계 최대의 온라인서점인 아마존닷컴도 한국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지만, 온라인 여행업체처럼 따로 한국어 홈페이지를 만들어 대대적인 마케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아마존닷컴과는 또 경우가 다르다. 이 때문에 국내 업체에서는 차별받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고 말했다.

정부는 모니터링은 하고 있지만 대안은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21일 문화체육관광부 관광정책과의 담당 실무자가 말했다.

“이 업체들은 등록이 안 되어 있으니 정부기관이 행정처분할 수가 없어요. 몇 달 전에 법적 검토를 했는데, 저희로서도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라고 종용하는 것밖에는요.”

지난해부터 국내 온라인 여행시장은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 특히 외국 업체가 본격적으로 진출한 호텔 예약 분야에서 호텔스닷컴 등 ‘외국계 공룡들’이 놀랄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외국계 온라인 여행업체는 크게 프라이스라인과 익스피디아 계열로 나뉜다. 프라이스라인은 각각 유럽과 아시아에 강점이 있는 부킹닷컴과 아고다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익스피디아 계열에는 전세계 항공·렌터카를 포괄하는 익스피디아닷컴과 최고 호텔 예약 사이트로 꼽히는 호텔스닷컴이 속한다. 온라인 여행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김형렬 러블리투어 이사는 아고다, 호텔스닷컴, 익스피디아 등 ‘빅3’이 불과 1년 만에 국내 호텔 예약시장을 상당 부분 잠식했다고 설명했다.

항공권 노마진 경쟁 속에 서비스의 질은…

“호텔패스 등 국내 유명업체의 한해 호텔 판매액이 500억~1000억원인데, 외국계 세곳이 들어온 지 1년 만에 국내 유명업체 한곳 정도의 양을 판 것으로 추정됩니다. 1년 만에 이 정도 했으니 앞으론 더 변화가 클 겁니다. 이 영향으로 국내 중소 벤처업체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최근 조직을 축소했습니다.”

외국계 업체는 대규모 광고 등 인지도를 높이는 물량 공세에 주력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네이버 검색에서 ‘홍콩 호텔’이나 ‘런던 호텔’이라고 쳐보라. 키워드 광고로 나오는 업체의 대부분이 외국 온라인 여행업체 홈페이지로 연결된다”고 말했다. 한국 내 판매 현황에 대한 문의에 대해 호텔스닷컴 쪽은 “한국 시장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구체적인 세일즈 관련 수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다만 2010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세자릿수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어 한국은 아시아·태평양 국가 중 본사에서 가장 주목하는 시장”이라고 밝혔다.

외국계 온라인 여행업체들은 당장 국내 법인 등록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호텔스닷컴은 “한국 법인 설립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발표된 것이 없다. 그러나 고객 편의 서비스는 확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익스피디아 코리아의 유은경 차장은 “지금은 한국 시장을 테스트하는 단계다. 궁극적으로 한국에 법인을 등록해야겠지만 전략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관광협회중앙회는 어떤 식으로든 규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조규석 기획본부장의 말이다.

“어떤 방식으로 허용할지, 어떻게 제재를 할지 골머리지요. 일반적으로 자유무역협정(FTA)에서 ‘영업장 없는 여행사의 허용’은 논외로 하고 있습니다. 각국의 법·제도가 다르니까 일단 결정을 미뤄둔 겁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법으로 규율하기 힘들다면, 이 업체들이 일단 협회로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그럼 협회를 통해 소비자들의 불만이나 개선 사항이 전달될 수 있고….”

자본의 세계화 속도가 가장 빠른 공간이 인터넷이다. 법·제도는 쾌속의 자본주의를 따라가지 못한다. 동시에 인터넷은 키보드와 계산기로 무장한 ‘알뜰한 소비자들’을 키워냈다. 이런 문화는 온라인 여행업체로 하여금 저가경쟁에 몰입하게 만들어, ‘타사보다 비싸면 차액 환불’ 같은 최저가 보상이 일반화됐지만 역설적으로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형 온라인업체에서 서비스의 질을 기대하긴 힘들다. 전형적인 ‘박리다매’의 구조를 취하기 때문이다. 국내 항공예약 시장도 이와 비슷한 경우다. 김형렬 이사가 말했다.

“인터넷에서 저가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내 유력업체들이 ‘노마진’으로 항공권을 내놓기 시작했어요. 원래 항공료 중 7%를 여행사가 수수료로 가져갔거든요. 이젠 여행업체가 그냥 항공사에서 좌석을 가져와 ‘공짜로’ 팔아주게 된 거죠. 이익은 다른 곳에서 창출하고요.”

일부 온라인 여행업체에선 상담원과 통화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서만 상담을 받는 업체도 나타났다.

과거보다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를 타고 고급호텔에서 잔다. 어떤 이는 ‘여행의 민주주의’가 실현됐다고 말한다. 반면 외국계 대형업체의 공세에서 대형마트의 부정적 이미지가 연상된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싼값으로 시장을 장악한 뒤 종국에는 소비자와 공급업자에게 지배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그들은 우려한다.

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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